출세와 명성을 엿보는 야심가들은 극장의 높은 문턱을 겨냥했다. 공연장이 영광과 명성으로 이어지는 지름길이었기 때문이다.
Alexandre Dumas
‘세기의 베스트셀러’ 알렉상드르 뒤마(1802-1870년)가 모친이 노잣돈으로 건네준 금화 3개를 갖고 파리에 정착한 것은 21세 때이다. 가난한 시골 청년은 낮에는 오를레앙 공작의 필사로 밥벌이하고, 밤에는 극장가를 배회하거나 희곡을 습작하며 야망을 키워나갔다.
그가 극작가로서 야망을 성취한 것은 1829년 희곡 <앙리 3세와 궁정>을 통해서이다. 빅토르 위고(1802-1885년)는 1830년 2월 낭만주의 희곡 <에르나니>가 무대를 점령하면서 본격적으로 스타작가의 길로 접어들었다. 이들 극작가들 배후에는 은근히 영향력을 행사한 이들이 있는데, 바로 카리스마를 지닌 배우들이었다.
마리 도르발
유명 배우들의 위력과 기세
뒤마가 시골뜨기 소년 시절부터 우상처럼 존경했던 명배우는 탈마(Talma, 1763-1826). 18세 시골 청년은 탈마를 만나러 파리로 무전여행을 하는데, 이때 노장 배우와의 만남은 그가 극작가로서 성공을 거두겠다는 야망을 품게 한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탈마는 나폴레옹이 가장 좋아했다는 비극 배우였다. 연기력뿐만 아니라 무대 장식과 의상에서도 철저한 역사적 고증을 추구했던 뚜렷한 역사관과 지성을 갖춘 인물로 전해진다.
시공을 뛰어넘는 불멸의 걸작 <레미제라블>에서도 탈마의 이름은 거론된다. 빅토르 위고 역시 탈마를 비롯한 당대 유명 배우들의 휘광과 위력에 무심하지 않았다. 어느 날 쟝 발쟝 앞에 자칭 가난한 명배우라며 자신을 소개한 파방투라는 인물이 나타난다. “나는 이래 봬도 과거에 명성을 날렸던 배우였소. 탈마의 제자였소! 탈마의 제자였단 말이오!” 라고 강조하며 자선을 호소한다. 머지않아 그의 정체는 드러나는데, 파렴치한 사기꾼 테나르디에 불과했던 것이다.
테나르디에는 인간 사회 밑바닥을 표류하는 전형적인 ‘레미제라블’ 인간형을 대변하는 인물이다. 쟝 발쟝이 자선을 베풀자마자 배은망덕하게, “네 인생은 이제 끝장났어! 오! 그런데 웃음이 나오는군. 나가 배우였다고 했지. 파방투라 했어. 막스 양, 무쉬 양의 상대역을 맡은 파방투였다고 말이야!” 라며 협박조로 조롱한다. 유명 배우들의 이름을 팔아 선량한 사람을 등쳐먹는 비열한 사기행각이 적나라하게 묘사되는 대목이다.
주목할 점은 상기 대사에 등장하는 배우들이 실제로 실존했다는 사실이다. 특히 막스 양(1779-1847년)의 경우 조르쥬 양(1787-1867년)라는 예명을 지닌 배우와 쌍벽을 이루었던 당대 최고의 명성을 누린 여배우였다. 탈마 이외에 보카쥬(1799-1862년)라는 예명의 남자배우도 유명했다.
이들 여배우들의 입김도 막강했다. 뒤마의 습작품 <크리스틴>이 1827년 코미디 프랑세즈 국립극장의 무대에 오르지 못 했던 것은, 바로 막스 양이 풋내기 무명작가보다는 고명한 피에르 드 마리보(1688년-1763년)의 작품을 선호했기 때문이다.
극작가와 여배우, 실과 바늘과 같은 관계
뒤마는 <앙리 3세와 궁정>으로 유명세를 얻으면서, 조르쥬 양과 마리 도르발(Dorval, 1798-1849) 등 당대 최고 여배우들과 연인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뒤마는 평생 많은 여배우들을 사랑했고, 여인들도 그를 흠모하고 뒤따랐다. 1851년 재산 파탄으로 벨기에 망명길에 오르면서도 노련한 배우 안나 보에와 신인배우 이자벨, 두 여인이 동반했을 정도였다.
극작가와 여배우는 실과 바늘과 같은 긴밀한 관계였던지라, 연인 사이로 발전되는 사례는 아주 비일비재했던 시대였다. 거의 모든 극작가들이 여배우들과 내연관계를 맺었는데, 굳이 불륜이라고 치부하기보다는 어떤 예술적 공감대가 형성된 동반관계였다고도 볼 수 있다.
19세기 프랑스 국민의 정신적 지주였던 위고에게도 유명한 쥘리에트 드루에(1806-1883년)가 존재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례이다. 드뤼에는 1833년 위고의 극작품 <뤼크레스 보르지아>에서 주인공 네그로니 공주 역을 떠맡았다. 이후 문학적 재능도 겸비했던 여배우는 <레미제라블>의 원고를 정리하는 등 평생 위고의 곁을 지켰다.
시인 비니의 격정적인 사랑
빅토르 위고와 어깨를 겨루었던 낭만파 시인 알프레드 드 비니(1797-1863년)는 여배우 마리 도르발을 사랑했다. 그는 1830년 11월자 일기장에, ‘희곡 <앙크르 원수부인>을 완성하다. 도르발 부인을 위해 집필한 작품이다. 도르발 부인은 배우들 중에 가장 훌륭한 비극배우이다.’ 라고 기록했다.
비니와 마리 도르발의 만남은 1830년 8월 9일 샤를르 10세가 왕권을 포기한 역사적인 날에 이루어졌다. 두 기혼 남녀는 얼굴을 맞대고 한담을 나누며 밤을 지새웠다. 이날 밤 시인은 열정적인 사랑에 빠져들었고, 죽을 때까지 사랑의 불꽃을 간직했다. 그의 삶에서 처음으로 느껴보는 열정이었던 것이다.
비니는 첫사랑의 소녀와 결혼하지 못하고, 독점욕이 강했던 모친이 선택한 규수를 아내로 맞이했다. 아내는 무뚝뚝했고 시인의 감수성을 이해하지 못 했을뿐더러, 몸은 약해 늘 병석에 누워있었다. 아내와 모친 사이에서 정신적으로 질식되었던 시인은 마리 도르발을 통해 비로소 삶의 기쁨과 정열을 체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비니는 사랑의 열정과 독점욕에 따른 정신적 고통을 이겨내지 못하고, 1838년 마리 도르발과 결렬했다. 이후 그는 희곡을 집필하지 않았다. 당대 문인들과도 교류를 끊고 운 둔 생활에 들어갔고, 사랑의 결렬을 정신적 상흔으로 평생 간직하며 살았다. 마리 도르발 역시 불문학사에 이름을 남겨놓은 것은 바로 비니의 영혼과 문학세계에 지대한 영향력을 주었기 때문이다.
한편 뒤마와 마리 도르발의 연인 관계가 공식적으로 세상에 알려진 것은 1833년 12월 이후이다. 감수성이 섬세하고 격정적이며 독점욕이 강했던 비니와 달리, 뒤마는 마리 도르발과 평생 오누이와 같은 관계를 유지했다.
1849년 5월 임종 직전 마리 도르발이 자신의 장례비를 지원해달라고 애절한 부탁을 요청했던 지인은 바로 뒤마이다. 여배우는 말년에 무일푼에 외톨이로 병마에 시달렸고, 당시 뒤마도 파산당해 빈털터리였지만 사방에서 푼돈을 모으며 옛 연인을 헌신적으로 도왔다.
유명 여배우들을 둘러싼 암투
물론 당시에도 유명 여배우들을 둘러싸고 연극 무대 뒤에서 질투와 암투도 생겨났다. 비니는 마리 도르발을 위해 집필한 <앙크르 원수부인>의 여주인공 역은 당연히 사랑하는 여인의 몫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비니의 소망은 무산되고, 조르쥬 양으로 대체되었다. 그럼에도 조르쥬 양의 눈부신 열연으로 1831년 6월 25일 초연 공연은 큰 성공을 거두었고, 비니는 뒤마, 위고와 함께 낭만극 작가로서 이름을 날렸다.
같은 무렵 1831년 뒤마는 자신의 희곡 <앙토니>의 연출을 직접 맡았다. 당시 뒤마는 조르쥬 양과 열애에 빠져있었다. 조르쥬 양은 “날씬하고 위엄이 당당하며 두 명의 황제와 네 명의 왕을 한꺼번에 감탄시킬 정도의 대단한 미모”라고 뒤마는 격찬했다. 물론 그 역시 <앙토니>의 여자 주인공은 조르쥬 양이 맡기를 원했다. 하지만 뒤마의 소망과 달리, 마리 도르발이 여주인공 역을 맡았다.
이들 여배우들을 둘러싸고 생겨난 경쟁과 시샘 때문이었다. 이로 인하여 뒤마는 갑작스럽게 제 5장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각본이 마리 도르발의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배우의 재치와 순발력
마리 도르발은 유랑극단의 짐마차 속에서 태어나 4살 때부터 연극 무대에 섰고, 눈썹 움직임 하나, 짧게 스치는 시선만으로 생각과 감정을 풍부하게 전달했던 명배우로 기록된다. 활달하고 쾌활한 성격에, 어느 작가들과도 지루함 없이 편안하게 대화를 끌어나갔던 지성과 재치, 순발력을 지녔던 배우였다. 바로 비니와 뒤마를 사로잡은 매력이었다.
뒤마의 <앙토니> 공연에서 생긴 일화는 유명하다. 마지막 장면은 여주인공이 머리를 뒤로 젖히고 죽은 자세를 취하며, 앙토니 역을 맡은 보카쥬가 비수를 들고 “내가 그녀를 죽였소! 그녀가 나의 사랑을 받아주지 않았기 때문이오!” 라고 절규하는 대사로 막이 내려진다. 그런데 이 마지막 장면을 남겨놓고 무대 담당자가 미리 막을 내려버리는 실수를 범했다. 대단한 공연 사고였다.
이를 눈치챈 관람객들이 발을 구르며 아우성치기 시작했다. 할 수없이 막은 다시 올랐고, 마리 도르발도 머리를 뒤로 젖히고 죽은 자세를 취했다. 문제는 앙토니 역을 맡은 보카쥬였다. 자존심이 상한 그는 화가 나서 분장실에서 두문불출하고 무대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자 극장의 분위기는 더욱 험악해져갔고, 꼼짝 안 하고 죽은 시늉을 하고 있던 마리 도르발이 천천히 고개를 쳐들며 일어섰다.
극장 안은 돌연 긴장감으로 침묵에 휩싸였다. “여러분들, 그가 나를 죽였답니다! 내가 그의 사랑을 거부했기 때문이랍니다!” 라고 여배우는 관객들을 향하여 침착하게 대사를 전달했다. 이 즉흥적인 대사에 관객들은 열광적인 박수갈채를 보냈다. 결국 이날 공연은 알렉상드르 뒤마라는 극작가의 스타 탄생을 예고하는 흥행 성공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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